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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an Biennale

부산비엔날레는 1981년 지역 작가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탄생한 대한민국 최초의 비엔날레인 부산청년비엔날레와 1987년에 바다를 배경으로 한 자연환경미술제인 부산국제바다미술제, 그리고 1991년의 부산국제야외조각심포지엄이 1998년에 통합되어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PICAF)로 출범한 이후, 격년제 국제현대미술전시로 개최되고 있습니다.

부산비엔날레는 정치적인 논리 혹은 정책의 필요성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부산 지역미술인들의 순수한 의지와 자발적인 참여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여타 비엔날레와는 다른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의 미술인들이 보여 주었던 부산문화에 대한 지역적 고민과 실험성 등은 오늘날까지도 부산비엔날레 정체성 형성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현대미술전, 조각심포지엄, 바다미술제의 3가지 행사가 합쳐진 경우는 부산비엔날레가 전세계에서 유일합니다. 또한 행사를 통해 형성된 국제적 네트워크는 국내 미술을 해외에 소개하고 확장시킴과 동시에 글로벌한 문화적 소통으로서 지역문화 발전을 이끄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태동으로부터 39년째에 접어든 부산비엔날레는 현대미술의 대중화, 즉 일상 속의 예술 실현을 목표로 하여 실험적인 현대미술 교류의 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2 무제 (코리안)

조회 14,221

관리자 2013-03-25 09:38

작가조 베어
본전시


1부, 무제 (코리안)

이 작품은 1962년과 63년에 만들어진 초기 그림들이다. 기본 구성 방식은 단순하다. 캔버스의 바깥 가장자리로부터 안으로 몇 인치 되는 지점에 놓인 약 4인치 넓이의 검은 띠들에 의해 6피트 길이의 흰색 정사각형이 반향된다. 좁은 청색 경계가 상부만 제외한 모든 면에서 검은색 띠의 안쪽 가장자리를 두른다. 그림에서 변주는 상부에서 일어난다. 여기서 청색 띠는 각 캔버스에 대한 느낌에서 놀랄 정도의 강력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단순한 패턴으로 사용된다. 검은색 띠의 넓이 또한 상부에서 변동된다. 그 엄격함이 이런 사실을 수용하기 힘들게 하지만, 이 그림들은 직관적으로 그려진 것이다. 그렇다고 그림들이 임의적인 연작은 아니다. 즉 각 캔버스에서의 문제들은 그림이 그려지기 전에, 가로세로 6인치 짜리 제소 그림과 더불어 해결된다. 테이프는 사용되지 않았다. 흠하나 없이 깔끔하지만 기계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가장자리는 반드시 붓으로 그려야한다는 엄격함을 아직도 보여준다.
이 그림들을 본다는 것은 대부분의 이른바 미니멀리즘 작품에서 느끼는 냉정하고도 이성적인 경험과는 아주 다르다. 그러므로 1960년대 초에 사물자체로서의 그리기를 시작했던 작가들의 작품에서 흔히 사용된 무미건조한 용어로 이 그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림의 진정한 시각적 특성을 부인하게 될 것이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베어의 작품을 보게 되면, 여러 캔버스들은 바로크적이고 낭만적인 것에서부터 구식의 완강함에 이르는 감각작용을 전달하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기하학보다는 빛과 분위기를 다룬다. 어떤 캔버스는 정사각형의 흰 색 중심으로부터 빛이 반사하는 듯 보이고, 어떤 캔버스는 빛을 흡수하거나 내뿜는다. 나는 이 작품들을 창문이나 아치형 출입문으로 보고 싶은데, 특히 작품이 비유적으로 그 사이를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낮게 걸려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하지만 내 눈은 그런 사각형들에서 공간이 암시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을 직관하여 더 이상의 투사를 멈춘다. 사각형들은 벽의 표면에서 배회하고, 환영적으로 뒤로 물러나기보다는 침투할 수 없는 빛으로 채워진다. 만일 그것들이 창문이 된다면, 우리의 대기보다 더 빛나는 대기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글:카샤 랑빌 Kasha Linville, 아트포럼 (1971)

2부, 이미지 작업
공중변소를 성전이라 부르는 것은 1917년 뒤샹이 예술가들이 헐거워진 이에 혀를 대듯이 예전의 한 시점으로 돌아갈 필요를 느끼는 결정적인 제스처가 없었더라면 신성모독에 해당할 일이다. 조 베어가 주제와 작품제목을 무신경하게 짓는 것과 대조적으로 거의 로스코(Rothko)처럼 얇게 덧칠하는 것처럼, 선과 면, 선과 면의 제각각의 리듬을 회화적인 균형 속에 예민하게 유지하게 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림 전체가 명확한 윤곽안에 다른 색으로 칠해진 면들로 구성되지만, 베어의 팔레트는 말끔한 세라믹 욕조나 유기체적인 모양을 연상할 수 있는 색깔을 고수한다. 비유적이고 환상적이기도 한 용어로, 그림의 주 요소는 소변기 혹은 ‘성전’이다. 비유를 하지 않고 읽으면, 이것은 전체 그림의 프레임 내의 프레임으로 그냥 넘길 수 있을 것이고, 그래서 베어의 초기작을 떠올리게 한다. 소변기의 갑옷은 십자가상에 대한 암시이며, 회색 혹은 갈색조의 타일이 깔린 바닥과 붉은 담으로 전체가 둘러싸여있다. 욕실의 오른쪽 벽은 밝은 갈색으로 되어있는 반면, 앞의 옷장과 왼쪽으로난 벽은 갈색빛이 돌지만 잘 구별되지 않는 색채로 된 면으로 물러난다.
그림의 구성을 이루는 더 많은 면이 있는데, 왼쪽으로 있는 밝은 공간은 순수한 캔버스를 확장시킨 것이고, 오른쪽 윗부분의 회색 면은 추상적으로 보이는 선의 패턴으로 덮여있다. 멜로디처럼 이 초록 혹은 노란색조의 선은 겹치면서 그림의 전체표면을 구성하는 한편, 특정 신체부위—페니스, 고환, 창자—의 윤곽을 묘사한다. 또한 변기의 싱크와 뚜껑이 소변기 내부에서 위에서 본 것처럼 물과 같은 선으로 그려져 있다. 이런 자세한 묘사는 쉽게 한 두 페이지를 더 채울 수 있겠지만, 여기서 끝내야겠다. 이제 분명해져야 할 것은 그녀의 그림에서 문제가 되는 것—즉 어떻게 색채, 형태와 질감이 스스로를 느껴지게 만드는지—에 관객을 정서적으로 끌어가기 위해 베어가 비유적 수단을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