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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an Biennale

부산비엔날레는 1981년 지역 작가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탄생한 대한민국 최초의 비엔날레인 부산청년비엔날레와 1987년에 바다를 배경으로 한 자연환경미술제인 부산국제바다미술제, 그리고 1991년의 부산국제야외조각심포지엄이 1998년에 통합되어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PICAF)로 출범한 이후, 격년제 국제현대미술전시로 개최되고 있습니다.

부산비엔날레는 정치적인 논리 혹은 정책의 필요성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부산 지역미술인들의 순수한 의지와 자발적인 참여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여타 비엔날레와는 다른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의 미술인들이 보여 주었던 부산문화에 대한 지역적 고민과 실험성 등은 오늘날까지도 부산비엔날레 정체성 형성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현대미술전, 조각심포지엄, 바다미술제의 3가지 행사가 합쳐진 경우는 부산비엔날레가 전세계에서 유일합니다. 또한 행사를 통해 형성된 국제적 네트워크는 국내 미술을 해외에 소개하고 확장시킴과 동시에 글로벌한 문화적 소통으로서 지역문화 발전을 이끄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태동으로부터 39년째에 접어든 부산비엔날레는 현대미술의 대중화, 즉 일상 속의 예술 실현을 목표로 하여 실험적인 현대미술 교류의 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산두 다리에

조회 2,067

관리자 2020-09-03 21:42

1908년 루마니아 출생

1991년 쿠바 하바나에서 별세

산두 다리에, 〈코스모라마 – 공간적 시 no. 1〉, 1964, 단채널 비디오, 35mm 필름, 4분 45초

Sandú DARIÉ, Cosmorama Poemaespacial no. 1, 1964, Single channel video, 35mm film, 4min 45sec

Courtesy of the Instituto Cubano del Arte e Industria Cinematográficos (ICAIC)

공간, , 색채를 탐구했던 산두 다리에는 키네틱 회화, 조각, 설치 및 비디오 아트 등 다양한 분야의 현대미술에 기여한 작가다. 그는 루마니아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자랐고, 1941년 하바나로 이주, 정착하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으며, 1945년 쿠바 시민권을 획득했다. 작가는 파리에서 법학을 전공(1926-1932)한 후 변호사로 직업 훈련을 받으면서 루마니아와 프랑스 언론의 풍자 만화가로 일했다. 이 과정에서 초현실주의자들을 비롯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을 만나 관계를 발전시켰다. 1946년 이래로 추상화 작업을 지속했던 다리에는 남미의 신구조주의(Neo-Constructivist) 운동에 가담했다. 〈Composiciones〉로 알려진 그의 첫 작품은 하바나의 리시움(1949)과 뉴욕의 칼리백 갤러리(1949)에서 소개되었고 이 시기 그의 작품은 서정적인 추상화로서 받아들여졌다

이 후 산두 다리에는 신조형주의(Neo-Plasticism)와 라틴 아메리카의 기하학적 추상 그룹 ‘Madí’를 만나면서 작업 방향을 구체예술(Concrete Art)로 발전시켰다. 줄러 코시체의 소개로 ‘Madí’에 합류했던 작가는 9년간 활동을 지속했으며, ‘Diez Pintores Concretos’ 그룹의 구성원으로 3년간(1958-61) 활동하기도 했다. 1952년 마리오 카레뇨, 루이스 마르티네즈 페드로와 함께 잡지 Noticias de Arte를 창간하여 기하학적 추상 흐름을 소개했다. 1950년대 중반부터 키네틱 아트를 실험했던 다리에는 〈estructuras transformables〉 연작으로 다양한 색채와 형태의 키네틱 작업을 선보였다. 이와 같이 미술에 있어서 움직임, 변형, 무한한 시각적 가능성에 주목했던 작가의 연구는 1960년대 무빙 이미지 실험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Cosmorama〉를 통해 예술의 경험을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