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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부산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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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부산비엔날레2014부산비엔날레작가/작품보기특별전 - 아시안 큐레토리얼展

Busan Biennale

부산비엔날레는 1981년 지역 작가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탄생한 대한민국 최초의 비엔날레인 부산청년비엔날레와 1987년에 바다를 배경으로 한 자연환경미술제인 부산국제바다미술제, 그리고 1991년의 부산국제야외조각심포지엄이 1998년에 통합되어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PICAF)로 출범한 이후, 격년제 국제현대미술전시로 개최되고 있습니다.

부산비엔날레는 정치적인 논리 혹은 정책의 필요성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부산 지역미술인들의 순수한 의지와 자발적인 참여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여타 비엔날레와는 다른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의 미술인들이 보여 주었던 부산문화에 대한 지역적 고민과 실험성 등은 오늘날까지도 부산비엔날레 정체성 형성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현대미술전, 조각심포지엄, 바다미술제의 3가지 행사가 합쳐진 경우는 부산비엔날레가 전세계에서 유일합니다. 또한 행사를 통해 형성된 국제적 네트워크는 국내 미술을 해외에 소개하고 확장시킴과 동시에 글로벌한 문화적 소통으로서 지역문화 발전을 이끄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태동으로부터 39년째에 접어든 부산비엔날레는 현대미술의 대중화, 즉 일상 속의 예술 실현을 목표로 하여 실험적인 현대미술 교류의 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4 천국의 문, 화해

조회 16,677

관리자 2014-09-16 14:13

작가금선희
특별전 - 아시안 큐레토리얼展


2014
Video Installation, Performance
Variable Size

천국의 문, 화해


1950년 대 부터 일본의 차별과 가난에 시달린 재일 교포에게 북한은 ‘지상의 낙원’이라고 여겨졌었다. 유토피아적 아름다운 도원향을 마음에 그리면서 희망을 가진 많은 재일교포들이 향한 곳은 지상의 낙원이 아니라 ‘천국의 문’ = ‘죽음의 문’이었다. 테사 모리스-스즈키의 “북한행 엑서더스”의 귀국자 증언에 따르면 귀국자 대부분이 숙청되고 수용소에 보내져 비참한 생활을 보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만경봉호를 통해 1959년 12월부터 진행된 귀국사업의 결말은 총 9만 명 이상의 재일교포들을 북한으로 보냈으며, 1984년에 종결되었다. 1959년 당시 재일조선인 수는 약 60만 명이었다. 그 60만 명의 대부분은 지금의 한국 영역에 속한 남반부 출신자로서 그 비율은 97퍼센트에 달했다. 재일조선인에게 북한은 ‘조국/fatherland’이었지만, 실제 그들 대다수가 태어난 땅은 아니었다. 그들은 친숙한 고향에 돌아간 것이 아니라 매우 낯선 사회를 향해 떠난 것이었다. ‘천국의 문: 화해’ 작업은 현재 한국과 일본에 거주하는 ‘북송 귀국자’ 탈북자들을 직접 만나러 가면서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일본에서 태어났고 총련계 집안에서 자란 재일교포 3세 작가가 자신의 삶의 이야기와 함께 은유적인 퍼포먼스와 설치 작업을 통해 풀어나간다.